작년 3월에 나는 처음으로 프랑스 문화원에서 김상란의 작품을 처음 대면했다. 그 때 내가 작가에게 무엇이라고 즉흥적인 평을 했는데 나는 그말을 잊었으나 작가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다가 이번 도꼬전시회에 글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미술에 관한 글을 써 본지도 오래고 약간 계면적기도 해서 사양을 했으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그 때의 캐탈로그를 다시 들쳐보며 생각을 더듬어 보면 아마도 이런 말을 했을것 같다. 발상이 아주 참신하고 작품들이 확고한 바탕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앞날이 기대된다고 고무했을 것이다. 첫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들은 김상란이 에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작품을 현상적으로 본 평이지만 그녀가 학교에서 전공한 염색과 염직, 전통 한국 매듭, 프랑스에서 전공한 조형예술, 프랑스 고블랑 국립 따피스리 제작소와 쉐일라 혁스 아뜰리에에서의 수학과 공동작업은 그녀가 잉태하고 있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제1회 개인전의 전반부에 전시된 작품들은 전통적인 매듭과 술을 이용해서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 그것들이 전혀 새로운 시각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하게 만든 작품들이었다. 후반부에 전시된 철사와 매듭을 이용한 설치작품들은 섬유만으로 제작한 전자의 연장선상에서 그와 괴를 같이 하는 발전 이라고생각된다.
매듭을 원용한 작품들은 자세히 음미해보면 기교적으로는 대단히 정교하고 섬세하다. 매듭을 만드는 수순이 얼마나 복잡하고 세심한 주의와 솜씨가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면 작가가 이 과정을 “단순작업이 강요하는 좌션의 계속”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 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전체를 보면 매듭과 술이 엮어내는 세계는 환상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군무” “팬지 정원”과 같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확연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또 한편 “동그라미 그리기” 시리즈는 색상을 달리하는 동일한 매듭을 일정한 방법으로 나열해서 개개의 매듭을 혹은 독립적인 동그라미 안에 혹은 연속적인 동그라미 안에 넣어서 화면 전체에 율동감을 주어 정적인 매듭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이 김상란은 “매듭에 의해서 한데 묶여진 환경미술 대작을 창작함으로써 옛날 매듭을 현대의 예술언어로 둔갑시켰다.”
그런데 철사를 이용한 “설치작업”은 얼핏 보면 매듭을 원용한 작품과 괴를 달리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매듭과 따피스리의 기법을 원용한것으로 보이며 쉐일라 혁스가 평했듯이 “어떤 의미에서 김상란은 벽으로 부터 마루바닥으로 뛰어내려 밖으로 나가 보잘것 없는 실오라기를 타고 우주 탐험을 시작할지도모른다.” 따피스리가 평면적이라면 김상란의 철사를 이용한 작품들은 입체적이다. 철사를 엮는 방법은 따피스리를 연상케하고 색실은 매듭과 술을 연상케한다. 이런 계열의 작품을 어떤 평론가는 소프트 스컬프춰(soft sculpture)라고 말했다. 또한편 대단히 규모가 큰 인스털레이션 작품들은 과히 environmental art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닥종이로 만든 작품들은 이 작가가 앞으로 나갈 방홍탤 암시하는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또는 공예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닥종이를 사용하는 예는 있어도 닥종이 자체를 염색해서 작품화하는 시도는 김상란이 처음인것 같다. 닥종이 자체가 갖는 질감과 유연성 때문에 어떤 작품은 정말 soft sculpture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작품들은 추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작품이 이 작가를 어디로 안내 할지를 아는 사람은 작가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가 말했듯이 이것이 “물레로 부터의 자유와 벽으로 부터의 탈피”를 시도하는 또하나의 제스츄어일지도 모른다.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연구위원
백승길
1992
![](https://www.kimsanglan.art/_bit/wp-content/uploads/1992/08/1992-korean_culturel_center-tokyo-1-512x292.jpg)